텍스트 코퍼스

Text Corpus

텍스트 코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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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코퍼스’는 특정 주제나 질문을 둘러싼 여러 목소리 그리고 서로의 미술관 프로그램에 관한 자유로운 생각을 글의 형태로 개진합니다.

‘Text Corpus’ exchanges the voices of specific topics or questions as well as the free ideas among the art museums about their programs in the form of writing.

Q1
Q2
Q3
Q4
지난 8월 28일 <다정한 이웃>은 프로그램의 첫 시작을 알리는 “텔레톤”을 방영했습니다. <다정한 이웃>의 텔레톤은 대담, 낭독, 토크쇼와 공연을 마라톤 형식으로 제작한 영상으로 연대와 공생이라는 주제를 느슨하지만 흥미롭게 다루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세 미술관은 그 동안 다른 성격으로 운영되어온 각 기관이 서로의 이웃이 되는 과정을 나누기 위해 여러 참여자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아르코미술관 전지영
2021년 09월 24일 오후 05시 49분
아르코미술관은 안규철 작가와 권태현 독립 큐레이터와 함께 예술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트선재센터는 시인 오은과 미술 비평가 콘노 유키를 초청하여 번역과 소통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백남준아트센터는 배드뉴데이즈와 함께 네트워크를 둘러싼 기술과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가수 겸 배우 신성우가 오랜 친구인 故정재철 작가의 작업 노트를, 밴드 새소년의 보컬 황소윤이 백남준의 글 “예술과 위성”(1984)을 낭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와 국제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바밍타이거가 세 미술관에서 공연을 펼쳤습니다.
아르코미술관 전지영
2021년 09월 24일 오후 05시 50분
텔레톤에 참여한 세 기관의 기관장과 실무자, 참가자와 같이 예술 공동체 속에서 공생하고 있는 서로 다른 동네의 이웃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여러 가지 목소리와 연대하며 형식적으로 다른 방법들이 관계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텔레톤처럼 하나의 주제로 여러 사람들을 초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편집하고 구성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이웃되기의 방식이었을까요? 서로 다른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이웃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이고,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르코미술관 전지영
2021년 09월 24일 오후 05시 51분
미술관들이 보통 협업을 도모할 때 전시를 같이 하자, 심포지엄을 같이 하자, 이렇게 행사의 형식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프로젝트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라는, 세 미술관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던 반성이자 바람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형식은 협업이 전개되는 과정 중에 고안되었고, 텔레톤, 플러그인, 오디오북의 내용도 하나씩 차근차근 꾸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런 순서와 방식의 협업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2021년 09월 28일 오전 10시 12분
‘이웃’도 그렇습니다. 거기에 이미 있어서 발견하고 모으기만 하면 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죠. 텔레톤 방송 중에 이런 내용이 기억에 남아요. 이웃은 옆에 가까이 있지만 만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또 매일 카톡을 주고받지 않아도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요.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성가신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가 내 울타리의 금을 넘을 때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정함’도 마냥 좋고 깔끔한 태도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감내하고 견디는 감각이어야 한다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2021년 09월 28일 오전 10시 16분
‘다정한 이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공허하거나 반어적인 수사처럼 들리는 것은, 우리가 이웃과 잘 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웃은 다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가 이웃과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빌렘 플루서는 인간은 대화와 담론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하고 타인에게 전달해주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대화」라는 글에서 그는 “우리가 종종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대화가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비슷한 정보를 갖고 있고, 그것을 타인들과 교환해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낼 수 없을 때, 늘 똑같은 결말로 되돌아가는 공회전하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외롭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화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말과 상대방이 하는 말 사이에 차이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차이와 다름을 인식하고 그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하는 동안, 대화는 우리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합니다.
안규철
2021년 09월 29일 오전 10시 43분
진정한 의미의 대화란 바로 이런 대화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대화를 하지 않으니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낼 수 없고, 담론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대화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무엇에 관해 대화할지에 앞서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 그 대화가 어떤 형태의 대화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정한 이웃」 텔레톤 프로젝트가 이런 논의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안규철
2021년 09월 29일 오전 10시 45분
텔레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 미술관뿐만 아니라 대담, 낭독, 토크쇼와 공연에 참여하여 주신 많은 분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지점 중 하나는 "'다정한 이웃'으로 시작했는데 '다양한 이웃'이기도 하네요!"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정함과 다양함 사이에 있는 것, 양측 모두에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 내부와 외부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이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혜주
2021년 09월 30일 오전 08시 51분
다정함과 이웃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지닌 전형적 이미지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단어들에서 분리됐던 적절한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바로 그 전형적 이미지 때문에 이웃에게 다정하거나, 다정한 이웃과의 만남이라는 것이 피상적이거나 그 가능성이 희박해 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다정함과 이웃의 의미가 다종다양하게 여러 갈래로 확장할 수 있도록, 단어보다 항상 앞서왔던 ‘조심스러운’ 마음 뒤에 더 이상 숨어있지 않을 수 있도록, 당당하게 전면에 나서준 ‘다정한 이웃’의 접근방식과 내용들은 그 자체로 무척 흥분되고 유의미합니다.
차승주
2021년 09월 30일 오전 08시 57분
요즘에는 ‘좋은 이웃’ 이전에 ‘기꺼이 이웃되기’, 혹은 ‘이웃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는데요, 섣부른 다정함을 경계하고, 성급하게 이웃이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주변의 이웃과 사회 곳곳의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정한 이웃’은 어떤 종류의 방식과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는 흥미로운 여정입니다.
차승주
2021년 09월 30일 오전 08시 58분
<다정한 이웃>은 코로나 19를 겪으며 예술 창작자/기획자에게 가장 큰 과제인 ‘기존의 공연/전시의 관람 방식이 제약을 받는 상황을 어떻게 우회/돌파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특히 온라인 상에서 동영상이나 VR 전시 등 기존의 컨텐츠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데 반해, <다정한 이웃>은 컨텐츠 자체보다 창작자/기관 간의 협업 방식을 실험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로서 2020년도에 서울문화재단 지원으로 기획된 이민경, 정세영 안무가의 <저드슨드라마>가 있었고, 최근 <다정한 이웃>과 거의 같은 시기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지회 큐레이터가 기획한 <워치앤칠>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기획 주체와 진행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팬데믹 상황에 적합한 비대면 전시/공연 방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두 프로젝트의 기획자를 모시고 각자의 경험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두개의 프로젝트 소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08분
안녕하세요. 저드슨 드라마 (취소선)을 공동 기획한 이민경입니다. 저드슨 드라마 (취소선)은 2020년에 진행했던 작업으로 총 13명의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6개월간 만나며 공동으로 기획 및 창작해서 나온 작업들인데요. 최종적으로는 GPS 기반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 이를 통해 물리적으로 찾아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한 십수개의 공연을 담았습니다.
안무가_이민경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17분
안녕하세요, '다정한 이웃' 텍스트 코퍼스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서, 워치 앤 칠》은 미술관과 예술가, 그리고 관객이 미술을 공유하는 동시대적 방식을 탐색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를 주축으로 해 마닐라 현대미술디자인미술관(MCAD), 치앙마이 마이암현대미술관(MAIIAM), 홍콩 M+미술관과 협력하여 구독형 아트 스트리밍 플랫폼 ‘워치 앤 칠’(https://watchandchill.kr)을 구축했습니다. 각 기관의 소장품 혹은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워치 앤 칠’ 플랫폼에 지난 8월 24일부터 매주 금요일 하나씩 공개되고 있고 모든 작품은 내년 2월까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현재 진행중인 MMCA의 전시를 시작으로 해 MCAD(10.29.~), MAIIAM(12.10~), M+(2022.1.7.~) 오프라인 쇼케이스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_이지회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18분
부연 설명하자면, 관객이 하나의 한정된 장소에 모이지 않고, 자신의 거주지와 가까운 서울 곳곳에 숨겨진 작품을 보물 찾기 하듯 찾는 과정이 필수로 포함되었던 공연입니다.
안무가_이민경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20분
저드슨 드라마 (취소선) sns 링크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udson.drama.strikethrough
안무가_이민경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24분
아시다시피, 해외 미술관 중 최근 봉쇄조치나 관람제한으로 수입이 줄어들어 재정 위기에 봉착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국의 국공립 미술관이나 문화재단은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이러한 전지구적 위기 상황을 견딘 만큼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창작자와 기획자의 입장에서도 각자 다른 층위에서 한계나 위기감 그리고 책임감을 느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경쟁보다 상생을 지향하는 ‘협업’이라는 방법도 이러한 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도기관의 일원으로서 혹은 공공기금의 수혜자로서 ‘협업’의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셨는지요?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25분
《우리 집에서, 워치 앤 칠》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한류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팬데믹 시대에 한국미술의 세계화라는 일방적인 전달 차원의 접근보다는 다자간 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이 더 유의미할 것이란 생각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주축으로 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것이지요. 협업한 미술관 MCAD, MAIIAM, M+의 소장품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예술 공동체, 인적자원, 오프라인 쇼케이스를 위한 물리적 공간 등 재화를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코로나로 인해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아시아 지역의 기획자들 간의 유대가 생겼습니다. ‘다정한 이웃’도 위기를 극복하는 한 방법론으로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 진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국립현대미술관_이지회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32분
홀로 성장하기보다 함께 공생하기 위한 환경을 구축한다는 의미로 이해되는데요, 한류의 확산이 일방적 전달보다 다자간 교류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층 성숙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기관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의 지식과 경험과 자원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는 팬데믹 이전에도 많이 시도됐었죠. 특히 대형 미술관의 신자유주의 경영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중소 규모 미술관에서 다양하게 기획되었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이러한 실험이 더욱 다양하게 이뤄지면서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미술 생태계 변화의 중요한 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54분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발로는 극히 개인적인, 예술가로서의 필요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구요. 동시에 제 개인적인 필요가 넓은 의미의 예술과 예술계와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2006년에서 2011년까지 Sweet and Tender Collaborations라는 매우 특수한 콜렉티브 활동에 전념했었는데, 유럽 및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한 공연 예술 콜렉티브였습니다. 다방향적 실험과 협업에 오로지 초점을 맞춘 공동 레지던시들을 해마다 진행했었고, 결과도 정말로 다양했습니다. 특수한 점은 이 콜렉티브가 매우 친밀하고 전면적인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안무가_이민경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56분
제가 2019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활동을 하면서 크게 느낀 점의 하나는 협업이 매우 분업적이고 기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고, 예술가들이 서로를 전면적, 전인격적으로 알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아쉬웠습니다. 질문의 답을 하자면, 협업의 가능성은 예술가로서의 세계 확장이라는 건조한 말로는 충분히 표현되기 어려운 창조성 자체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드슨 드라마 (취소선) 소개글에서는 ‘마법같은’, ‘화학적’ 협업 또는 ‘미묘한 공동창작의 감각’ 등으로 협업의 추구점을 묘사했습니다.
안무가_이민경
2021년 09월 30일 오전 10시 57분
분업적 기계적 협업과 친밀하고 인격적 협업의 차이에 대한 다른 경험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자는 마치 목표를 정하고 계약을 맺는 기관 사업에 가깝고, 후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의 과정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오랜 지인들 간의 ‘놀이’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드슨드라마>가 기대한 창조적 발상이 이뤄지는 ‘마법적 협업’은 후자의 경우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협업의 방법 자체가 곧 실험이자 결과라는 생각도 들고, 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06분
팬데믹 상황에 비대면 소통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각자 기획한 프로젝트는 온라인 플랫폼/앱을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첨단 매체 기술이 소통을 확장해준 좋은 점도 있지만, 때로는 기술 자체가 제약이 되기도 하고 기획자의 의도를 굴절시키기도 하더군요. 예를 들면, <다정한 이웃>의 경우도 불특정 다수의 참여와 대화를 유도하여 ‘모두’를 이웃으로 초대하고 싶었지만, 예측 불가능한 혐오나 배제의 발언을 걸러낼 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이상적인 수위의 ‘열린 구조’는 실현되기 어려웠습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과 인터넷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애초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포기 또는 발전)된 부분이 있었는지요? 협업을 통해 촉발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검증되지 않은 실험이 이러한 제약과 부딪히는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07분
‘워치 앤 칠’은 소장품을 공유한다는 근본적인 프레임워크에서 각 미술관의 리지스트라와의 협의가 쉽지 않았습니다. 영상작업의 경우 대개 하드드라이브에 담긴 파일의 형태로 수장고에 보관된 것이 물리적 현실이고, 이를 회화작품처럼 배타적인 방식으로 취급하기에(한 작품을 한 곳에만 보일 수 있는) 오늘날 극대화된 영상 매체의 유동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소장품의 ‘영원성’을 위해 보수적인 핸들링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지하고, 정해진 기간 안에 소장품의 온라인 공유를 공론화해 결론을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각 작가의 동의를 구하고 전시 사본을 플랫폼에 개제하기로 협의했습니다. 그래서 ‘워치 앤 칠’ 플랫폼 영상 크레딧을 보시면 기관 소장품이 명시되고 그 옆에 ‘작가 제공’이라 적혀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_이지회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10분
또 온라인 플랫폼을 경험하는 물리적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작품 감상의 환경이 극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공간 불구속성, 통제불가능 등의 이슈들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흥미로운 지점이자 각 작가들과 논의의 주안점이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쇼케이스에서 선보이는 작품과는 다른 작가의 커멘터리 비디오나 작품에 대한 인터뷰, 전시장을 게임으로 구축한 가상의 공간 등 새로운 버전의 작품을 커미션하고 다차원적인 경험이 가능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접근성이 높은 온라인 매체의 특성상 함께 협업하는 M+ 미술관의 소장품 중 홍콩의 현재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작가가 다소 위험해질 가능성이 재기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해당 작품은 게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지요.
국립현대미술관_이지회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20분
하아 의도와 다른 전개는 매우 많았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개발은 저희 예술가들로서 첫 경험이었고, 앱 개발 뿐 아니라 이후 문제점을 보완하고 안정화 및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나 비용, 인력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저희 앱은 공연 기간 중에 작품 위치 등 모든 입력된 정보가 사라진 적이 한번 있었고, 공연 기간 후에 사라진 이후에는 복구가 되지 못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면, 저드슨 드라마 (취소선) 앱은 저희 공연이 끝난 이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공연을 숨기고 연중 찾아서 볼 수 있는 오픈 소스이자 플랫폼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안무가_이민경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26분
또, 관객 또는 관계자들은 보물찾기나 온오프 결합이라는 아이디어에는 큰 관심을 보였지만, 저희가 구상한 것처럼 직접 서울 도심을 걸어다니며 물리적인 보물을 찾아내는 게임 참여는 피곤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되었어요. 결국 공연에 직접 참여하고 목격하신 분들은 소수인 점이 아쉽죠.
안무가_이민경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27분
앞의 답글에서 언급하셨듯이 새로운 시도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발생시키기 마련이지요. 물론 불만족스럽거나 불미스런 경험도 있을 수 있지만 더 큰 배움과 발견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다정한 이웃>의 경험 중 개인적으로 가장 유익했던 점은, 세 미술관이 함께 하면서 기관 또는 직급 간의 위계가 없는 ‘수평적 구조’와 서로의 제안을 존중하고 자발적으로 업무를 나눠서 진행한 ‘열린 태도’가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특수한 상황에 대응해서 단기간에 만든 프로젝트라는 점과 참여기관 모두 결과나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미래의 미술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새로운 실험이라는 생각을 공유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점은 제도기관의 경험으로서는 너무나 신선했는데요. <저드슨드라마>와 <워치앤칠> 에서도 프로젝트 이후에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온라인 기반 협업 프로젝트의 유의미한 경험이 있었다면 함께 나누어 주세요.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30분
‘워치 앤 칠’ 플랫폼은 3개년의 시범 운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올해 아시아 지역 미술관과의 협업을 시작으로 내년 유럽/아프리카, 그 다음 해 북/중/남미 지역 미술관으로도 협업을 확장하고자 합니다. 백신 접종률이 오르면서 해외여행이 조금씩 시작되고는 있지만 이 역시 극심한 불균형이 있죠. 향후 2년 동안 팬데믹의 추이와 함께 프로젝트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기대됩니다. 혹자는 여러 미술관이 협업하면서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하던데, 놀랍게도 별다른 드라마 없었어요. 각 기관의 호기심, 헌신,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마주한 위기의 상황 속 돌파구가 되었다는 점이 작용했을 수도 있구요. 유대감과 호기심은 코로나를 극복한 세상이 온다 해도 간직하고 싶은 퀼리티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_이지회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33분
저드슨 드라마(취소선)은 비대면 상황에 대응하는 콜렉티브의 더 철저(처절?)하게 대면 미팅의 중요함을 고수하고자 했던 역설적 시도에 가깝습니다. 온오프라인 결합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관객과의 결과물 공유에서도 찾으려고 했었던 지점이구요. 좋은 온라인 상 협업의 경험을 말씀드릴 건 없는 것 같고, 저희가 풀려고 했던 온라인에서도 어떻게 대면에서(만?) 가능한 만남과 교류를 구현할 수 있을까 했던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안무가_이민경
2021년 09월 30일 오전 11시 46분
<다정한 이웃> <저드슨드라마(취소선)> <우리집에서: 워치앤칠> 세 프로젝트가 개인창작자 vs 공공기관, 국내 vs 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획되었다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공통점이 보입니다. 우선 기관이든 개인이든 상호 신뢰와 유대감이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과 온라인 소통을 도구로 삼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팬데믹 상황에서 자칫 중단될 수 있었던 대화와 교류를 이어가고자 한 대안적 방법이란 점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습득한 기술과 지식은 향후 더욱 유연하고 긴밀하고 확장적인 물리적 교류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남길 것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여정에서 각자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에게 배우는 기회가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2021년 09월 30일 오후 12시 33분
앞의 대화에서 서로의 지식, 경험과 자원을 공유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음을, "마법같은" 협업을 끌어내는 방법에 대한 갈증을 실감했습니다. <다정한 이웃> 또한 미래 미술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이웃들과 함께 실행해보는 실험일텐데요. 미술관에 연결된 미술관 종사자, 작가, 관객이라는 각각의 정체성 보다도, 모두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생각해본다면 미술관의 근본적인 목적과 본질에 새롭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다양한 이웃이네요!
백남준아트센터 김윤서
2021년 10월 11일 오전 11시 30분
다양한 관점과 논의가 생성될 수 있는 시민적 삶의 기초, 사회 기반 시설로서의 미술관의 역할에 주목해서 생각해보고 있는 요즘입니다. 여러 삶을 사는 시민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곳, 사람들이 모이고 시민의 미덕, 감각을 습득하는 평생학교 같은 미술관이 어느때 보다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은 최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기획전 <오픈 코드. 공유지 연결망> 연계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책읽기 모임을 가지면서 더욱 뚜렷해졌어요. 최근 다정한 이웃 플러그인에서 영상으로 소개하기도 했지요.
백남준아트센터 김윤서
2021년 10월 11일 오전 11시 32분
코딩이라는 또 하나의 언어를 학습하면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컴퓨터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가는 책 '마인드스톰'을 각자의 장소에서 미리 읽고 온라인에서 만난 것인데요. 코딩 열풍에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인 학부모와 교사, 문화와 컴퓨터를 어떻게 엮을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 문화기획자, 전시를 본 관객, 전시를 기획한 저는 물론, 이 책의 한국어 출판에 감수자로 참여했던 김승범, 최승준 작가와 함께 각자의 경험과 시각으로 선정한 책의 부분을 낭독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 온라인 북토크에 '수학포기자'부터 코딩 전문가가 분리되지 않고 한데 모였고,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기술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생각을 나누는 와중에, 이를 공동의 감각으로 표현하는 언어를 찾고 재구성하면서 생겨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경험했습니다. "각자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에게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김윤서
2021년 10월 11일 오후 12시 11분
<오픈 북마크.오픈 북토크>에 참여한지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준비하며 2020년에 재출간된 <마인드스톰>을 다시 뒤적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참가자분들의 낭독을 통해 "어? 저런 부분이 있었던가?" 싶으며 다시 읽고 또 다른 풀이를 하며 텍스트의 맛을 느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마무리를 한 후 제 안에서 떠오른 질문 중에 소리내어 읽는다는 "<낭독朗讀>이란 무엇일까?"란 질문이 있었습니다.
최승준
2021년 10월 11일 오후 12시 13분
궁금해서 찾아보니 <밝을 낭(랑)> 朗자를 쓰더라고요. 둘을 붙이면 낭랑(朗朗)이 되어 맑고 또랑또랑하단 의미가 된다고 합니다. 한자의 모양에서 해의 밝음이 아니라 달의 밝음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묵독默讀>을 덩달아 찾아보니 '잠잠하게 속으로 읽는다'는 의미로 <검을 흑>이 한자의 모양 속에 들어있었습니다. 이제사 생각해 보니 글을 읽는 소리를 잘 경청하려면 다른 것이 잠잠해야 하고, 듣는 사람들이 그 낭랑한 소리를 잘 묵상할 수 있어야 했죠. 그런데 이번 <오픈 북마크.오픈 북토크>에서는 여기에 관해 시각적으로 펼쳐놓고 즉석에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려 시도하니 밝음도 잦아들고 어두움도 잦아들며 둘이 섞여 회색이 나타나는 느낌이 났단 말이죠. 그래서 되려 흥미로웠습니다. 역시 이렇게 어떤 것은 시도해 봐야 비로소 알 수 있고, 덕분에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며 팅커링(땜질)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마인드스톰>의 저자 시모어 패퍼트의 말로 바꾸자면 "디버깅"이 되겠죠.
최승준
2021년 10월 11일 오후 12시 16분
<오픈 북마크. 오픈 북토크> 온라인 모임에 함께 했던 참여자로서 인사를 남깁니다. 프로젝트의 제목이 '다정한 이웃'이라니! 미술관이라고 하면 멋지긴 하지만 저와는 거리가 먼 건축물과 어려운 작품, 함부로 만지면 안 되고 떠들어서도 안 되는 공간이 떠오르곤 했는데, 부르는 이름만으로 조금은 온기를 가진 이웃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예술을 통해 어려운 삶의 작은 틈을 찾고, 예술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기도 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저도 여러분들의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윤자형
2021년 10월 11일 오후 07시 42분
백남준아트센터 온라인 모임에서 함께 읽은 시모어 페퍼트의 책 <마인드스톰>을 통해서 전문가가 참여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기도 하고, 참여자들끼리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완성해가도록 돕는 수평적이고 창조적인 공동체를 떠올렸습니다. 무엇을 배우든, 혹은 어떤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하든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디버깅'을 거듭하며 조금 더 멋지게 성장하는 공동체 말이죠. 저는 '다정한 이웃' 프로젝트도 그런 예술공동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위기를 만나기도 했지만, 미술관, 기획자, 작가 등등 모두가 디버깅을 거듭하며 새로운 방식의 만남을 실현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덕분에 저처럼 예술이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도 미술관을 좀 더 가깝게 느끼게 되었어요. 이렇게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디자인된 웹페이지 덕분에, 아직은 어렵지만 저도 한마디를 남길 수 있게 되었고요.
윤자형
2021년 10월 11일 오후 07시 45분
저는 낱말 뜻풀이하는 걸 좋아해서 최승준 선생님이 말씀하신 낭랑함과 팅커링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늘 고민되는 팅커링, 땜질이라고 하셨는데 저한테는 ‘만지작거리는 손으로 생각하기’랄까요, 머리 속으로만 하는 생각이 아니라 신체를 움직이며 하는 생각, 이런 뜻의 느낌이 들어요. 소리 내어 읽는 낭독도 어떤 가능성을 낭랑하게 만드는 팅커링이 될 수 있는 건 그것이 몸을 쓰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2021년 10월 12일 오후 08시 38분
이 공간에서 디버깅과 팅커링이란 단어가 오가는 게 저는 재밌습니다. 미술과는 다른 분야에서 만들어진 단어일 테고, 처음의 의미는 매우 좁기도 했습니다. 다정한 이웃이 된다는 것은 다른 분야의 어휘나 생각에 대해서도 "다정해진다"라는 의미겠죠. 디버깅은 말 그대로 "기계장치에 문제를 일으켰던 진짜 벌레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시작해서, 공학 분야에서 매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방법론으로 발전시켜왔지만, 맥락의 울타리를 넘어오면서 오히려 우리의 배움이나 인식에 대해 비춰보는 생각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김승범
2021년 10월 15일 오후 05시 00분
팅커링은 심지어 처음엔 꽤 부정적으로 들리는 "대충 일하고, 쓸모없이 바쁘다[1]"로 시작했는데요, 우리 시대가 이 의미를 다른 방향으로 고쳐 쓰기 한다는 것은 여러 생각의 여지를 줍니다. Oxford Learners Dictionary가 고쳐쓴 의미가 저는 특히 마음에 드는데요, "to make small changes to something in order to repair or improve it, especially in a way that may not be helpful"[2] 고치거나 개선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고쳐나가는데, 그것이 "당장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한다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김승범
2021년 10월 15일 오후 05시 00분
[1] work imperfectly, keep busy in a useless way," is first found 1650s https://www.etymonline.com/word/tinker
김승범
2021년 10월 15일 오후 05시 06분
[2] https://www.oxfordlearnersdictionaries.com/definition/english/tinker_2?q=tinkering
김승범
2021년 10월 15일 오후 05시 06분
텔레톤과 이어진 텍스트 코퍼스를 통해 ‘다양한’ 이웃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사회적 주체로서 미술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은 행동하는 문화기관으로서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다름’과 ‘차이’에 대한 이해가 만들어지는 장소인데요. 최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진행한 <전시 및 미술 작품 접근성 탐색 워크숍>에 참여 후, 미술관 안에도 어떠한 ‘조건’을 지닌 누군가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울타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물리적, 심리적 울타리를 허물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까요? 다정한 이웃의 세 기관이 ‘다양한’ 이웃을 환대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미술관 안팎에서 전시 접근성 향상을 위해 힘쓰고 계신 김현경 정책연구가와 연구모임 웰코밍인코밍, 이동엽 작가를 함께 초대했습니다. 세 분(팀)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또 미술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지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아트선재센터 문정연
2021년 10월 19일 오전 10시 41분
안녕하세요. 시각예술가 이동엽입니다. 장애인 뿐만 아니라 이동이 불편한 비장애인의 경우 공공기관 또는 미술관이나 사립갤러리 등을 방문할 때 각자의 상황에 따른 불편함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접근성의 문제, 공간의 문제, 시설 사용의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이 있는데 사실 이런 부분은 개별적인 공간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개선이 가능하기도, 불가능하기도 할 것입니다. 과거 공간 탐구 워크숍 등을 통해 고민하고 개선할 부분을 찾아 보고 토론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추후 이러한 문제 제기가 얼마만큼 개선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느 공간의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토론의 장을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 제기에서 끝나지 말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동엽
2021년 10월 22일 오후 03시 00분
2019년 팩토리2에서의 전시 <영인과 나비>(오로민경 개인전)를 준비하면서 전시 공간의 두 뼘이 안 되는 문턱과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화장실, 문자통역과 점자 리플렛 등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접근성'이라는 것의 아주 또렷한 실체를 마주하는 동시에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추상적으로만 생각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웰코밍 인코밍이라는 리서치 그룹을 만들어 진행한 토크에서의 김원영 작가의 말을 나누고 싶습니다. "완벽한 베리어프리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결국엔 (장애인)관객이 그 공간 안에서 '존중받고 있는가'가 핵심일 수 있다." "장애인 관객이 전시장에 가고 안가는 것은 접근성의 문제도 있겠지만 전시를 관람하는, 즉 관객이 되어본 경험 자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나눈 후 미술관에서 장애인 관객의 관람 경험을 만드는 (이를테면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라든가) 보다 적극적인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웰코밍 인코밍(여혜진)
2021년 10월 25일 오후 12시 19분
안녕하세요 뮤지엄 정책을 고민하는 연구자 김현경입니다. 저는 재작년 <장애인 접근성 강화를 위한 박물관미술관 가이드라인 방향>이라는 연구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박물관미술관의 접근성의 문제를 탐색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동안 전시된 ‘오브제’를 중심으로 운영의 방향이 결정되었던 뮤지엄 현장에 대하여 ‘관람객’ 중심의 운영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웃’ 중 장애가 있는 ‘이웃’을 중심에 두고 살펴본 것이지요. 연구를 진행하면서 제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던 것이 바로 혜진님께서 말씀해주신 부분과 무척 맞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뮤지엄은 관람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정연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환대하기 위해서 뮤지엄은 관람객을 존중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은 아직까지도 저에게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김현경
2021년 10월 25일 오후 12시 19분
(앞에 제 답변에 이어서 ^^)사실 연구의 결과는 ‘존중받고 있지 못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라고 감히 단정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의 확인에 그칠 수밖에 없었는데요. 연구의 한계(?) 덕분인지 ^^; “뮤지엄은 어떻게 관람객을 존중해야하는가?”의 질문은 저에게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답니다.(하하하 (^-^)/ 관련해서 환대에 대해서 (동명이인인) 김현경 연구자님께서 언급해주신 얘기를 실마리로 제 물음의 실타래들을 풀어가고 있는데, 여러분들께도 작은 인사이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짧은 내용 남겨드립니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2015. 문학과지성사)
김현경
2021년 10월 25일 오후 12시 19분
웰코밍 인코밍으로 연이 되어 만난 분들과 다시 만나 생각을 나누어 기뻐요! 혜진님은 미술관에서 장애인 관객의 관람 경험을 만드는 보다 적극적인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이동엽 작가님은 '문제 제기에서 끝나지 말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해주셨어요. 저 역시 깊이 동감합니다. 현경님이 소개해준 본인 연구의 주제와 (동명인) 김현경 저자 글의 인용부 또한 혜진, 동엽님 생각과 연결됩니다. 만약 미술관이 장애가 있는 '이웃'을 우리와 같은 동료 관객으로 상상한다면, 이들의 참여를 더 용이하게 만들어야 할 미션을 챙길 수 있겠죠! 미술관과 장애를 가진 관객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이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야겠고요!
웰코밍 인코밍(나하)
2021년 10월 25일 오후 01시 01분
정연님도 함께 한 저희의 워크숍에서 저 또한 많은 것을 배웠는데요. 그중 하나는 장애가 있는 '시민'을 우리의 동료 시민으로 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생소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이동엽, 이우주 작가님 그리고 다이애나랩과의 대화 덕분인데요. 전시 공간으로 가는 이동 경로와 설비가 보장된 비장애인 관객에게 전시 관람은 선택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개인에게는 이동과 관람에 필요한 자원의 제약으로 선택이 아닌 '불가'의 문제가 됩니다. 전시 관람을 둘러싼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적 환경(구조) 앞에서, 미술관과 같은 문화예술분야 공공기관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웰코밍 인코밍(나하)
2021년 10월 25일 오후 01시 01분
현경님께서 저희 워크숍에서 공유해주신 호주의 『Many Voices Making Choices: Museum Audiences with Disabilities』를 보면, 접근성 체크 리스트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커뮤니티 연계를 위한 아웃리치 활동'을 언급합니다. 관람객이 와야만 성립하는 전시 기관(및 공간)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극 홍보하고, 나아가 이러한 무장애전시관람 조건을 필요로하는 지역사회 커뮤니티 기관(학교 등)에 특정해 초대 메시지를 보내는 등이지요. 마치 내 친구에게 '너에게 좋은 선물을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어. 꼭 놀러와! 기다릴게!'라고 보내는 메시지가 떠오르는데요. :) 이 지점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도서관 등 기관의 또 다른 얼굴을 상상해봅니다.
웰코밍 인코밍(나하)
2021년 10월 25일 오후 01시 02분
저는 ’언러닝’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다정한 이웃>은 미술관의 활동의 변화와 그 방법론에 대한 고민에서도 출발하였는데요. 최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쿤스트인스티튜트 멜리와의 온라인 대화를 통해서, ‘비트 데 비테’라는 기관의 이름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관 내 외부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배움의 과정이 기관의 이름 변경 뿐 아니라 기관의 방향 전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의 향후 변화에 있어서 배움과 공동체 참여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데요. 이것이 미술관이 관객을 포함한 참여자들에게 배움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외부의 참여자가 기관의 변화에 실질적으로 개입한다는 지점에서 ‘언러닝’이 작동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태윤 작가가 ‘언러닝’을 “배우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로 정의해 주신 것에 기반하면 이것이 익숙한 제도 즉 미술관의 작동 방식을 질문하는 과정을 지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아트선재센터 김해주
2021년 10월 28일 오전 11시 38분
각자의 활동, 위치에서 이 ‘언러닝’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제가 미술관의 입장에서 어떻게 ‘언러닝’이 적용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창작자와 교육자의 입장과 기대, 방식이 있을 것 같아요. ‘언러닝’은 현재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 중인 최태윤 작가와 협업자들의 전시 <시-코드-실>(2021.10.14-12.12)에서도 핵심적인 개념이고, 작업과 전시 그리고 연계 프로그램에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최태윤 작가에게 이 같은 ‘언러닝’의 방법론을 적용하게 된 계기, 어떤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 얘기 들어보고 싶어요.
아트선재센터 김해주
2021년 10월 28일 오전 11시 59분
학교를 비롯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일반적인 배움의 과정은 지식과 정보를 위에서 아래로 전달받는 수동적인 과정인데요. ‘언러닝’은 변화를 지향하는 역동적이고 수행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매우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변화이기도 하고요. 제가 ‘언러닝’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이 2013년 경 이양희 안무가의 작업을 통해서 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한국 무용의 습득 과정을 다시 해체 하는 것으로서 배움의 실타래를 다시 풀어내고 새로운 직조를 끌어내는 안무로서 이해했습니다. 이양희 안무가에게 ‘언러닝’이라는 방법론을 적용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아트선재센터 김해주
2021년 10월 28일 오후 12시 04분
몇 년 전 언러닝Unlearning이라는 표현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주변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언러닝의 번역으로 사용되는 폐기학습, 반학습 등의 표현은 언러닝이 가진 회복의 가능성을 표현하지 않기에 적당하지 않았어요. 당시 한 대학에서 워크숍을 진행할 기회를 주신 교수님이 제안하신 '탈학습'이라는 표현이 기존의 학습을 넘어선다는 뜻에서 가장 적합했어요. 하지만 탈학습 또한 교육의 맥락에 있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언러닝과 가장 의미가 비슷한 표현은 ‘배우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 인 것 같아요.
최태윤
2021년 10월 30일 오전 10시 17분
런Learn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배운다는 동사로 사용되죠.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런Learn은 무엇을 가르친다는 수동사로도 사용되었지만 (예를들어 He learned me horse riding), 요즘은 동사로 주로 사용 되죠. 배운다는 것은 학습과 같은 것일까요? 저는 한 개인의 내적인 변화와 실천으로서 배움에 관심이 있어요.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워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일 속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있죠. 배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삶을 살 기회를 거부하는 것일수도 있어요. 한편 학습은 제도 안의 규칙을 따라가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학습과 배움은 매우 밀접하지만, 그 두 개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러닝이 학습의 맥락이 아닌, 배움의 수행에 대한 의문이라고 생각해요.
최태윤
2021년 10월 30일 오전 10시 18분
활동가이자 영화감독인 아스트라 테일러의 다큐멘터리 이그제민 라이프Examined Life에서 주디스 버틀러와 화가 수나우라 테일러는 상호의존이라는 주제를 의논해요. 그들의 대화는 책 불온한 산책자로 편집, 번역되기도 했어요. 우리가 언러닝 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독립, 자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입니다. 버틀러와 테일러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모두 상호의존성을 갖고 서로의 돌봄이 필요로 한다는 것, 그 누구도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 그 '완전하지 못함'이 모든 개인을 연결하는 정체성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과잉된 독립성은 개인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대다수와 조금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적인 합의의 장벽을 만들어요.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이웃이 아닌 타인으로 생각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언러닝이란 우리가 학습한 지식과 관습을 허물기, 그리고 새로운 정의를 함께 만들어 가는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태윤
2021년 10월 30일 오전 10시 22분
제게 언런(Unlearn)은 배운 것, 아는 것을 고의로 잊고 폐기하는 수행(Practice)입니다. 이때의 폐기는 부정과 소멸이 아닌 발견과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춤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전통적인 도제교육 방식으로 한국무용을 시작하였고, 엄격하고 높은 수준의 통제와 관리 안에서 예술을 경험하였어요. 그 연마의 과정은 특정한 형식의 춤사위를 잘 “춰 내는 것”의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춤의 기술력과  표현의 강도에 주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과정에 대한 사유와 관점이 좀 달라졌지만, 내가 추는 춤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과 한국 무용이라는 거대한 이름으로 정해진 춤의 형식, 원형이 무엇일까? 나는 한국무용의 형식을 정말 잘 알고 있나? 라는 질문이 지배적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명인들을 찾아다닐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이양희
2021년 10월 30일 오후 12시 03분
하지만 정말 그것이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왠지 너무 거대한 세계에서 다시 갇혀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한국무용을 오랜 기간 배웠고 춤을 추지만 막상 내가 추는 춤이 어디서 시작했고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형식이 있는지 모르니 스스로 연구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시작은 분석과 정리를 위해 동료들 앞에서 춤을 추고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을 단어로 수집하였습니다. 외부로부터 수집한 움직임에 대한 단어들을 다시 움직임, 시간, 퀄리티의 항목으로 다시 분류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꽤 오랜 기간 지속했습니다. 저는 뉴욕에 있었기에 한국말이 아닌 영어의 언어로 정리하고 그것을 분석과 분류의 메커니즘을 구동하기에 적절한 환경과 조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어떤 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언런(Unlearn) 단어 자체를 접했습니다.
이양희
2021년 10월 30일 오후 12시 05분
그 화가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그림을 그리며 지내다가 갑자기 약 3년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그때의 시간은 더 이상 그가 선망하는 화가의 화법이 아닌 그 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언런의 시간이였다는 내레이션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순간 언런이라는 단어가 제 귀에 쏙 박혀버렸어요. 그 시기, 저는 ‘뷰 포인츠’라는 공연예술 핵심 개념을 훈련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고 적극적으로 뷰 포인츠의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기반으로 움직임의 기본, 고유한 특성, 습관, 분석 등이 작업 과정에 적용되었고 한국 무용의 순수 움직임 언어를 재고하는 작업을 발전시켰습니다. 한국 무용의 원형을 찾아가고자 했던 과정은 '어떤 특정한 형식의 춤사위를 기본 언어로 구사하는 무용수가 만들어내는 춤’의 특징을 찾아 총 12가지의 <이양희 연습>으로 정립하였습니다.
이양희
2021년 10월 30일 오후 12시 06분
배운 것을 폐기하려면 배운 것이 무엇인지, 아니 지식이 아닌 배움의 과정에서 지금 내가 알게 된 것,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제가 가지는 언런의 핵심 기조입니다. 나아가 고착화된 전형적인 안무방식에 대한 관점과 태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양희
2021년 10월 30일 오후 12시 06분
최태윤 작가님의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독립, 자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언러닝해야 한다는 말이 깊이 다가오네요. 능력 중시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잘하는 개인을 높이 평가합니다. 혼자 해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각자를 더 긴장 속에 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사회적 약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더욱 타인의 시야로부터 숨게 될 것이고요. 언러닝을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셨다는 부분에서 지난 해 연말 아트선재에서 열렸던 코키 다나카의 개인전에서 전시의 제목이자 그의 작품의 제목이었던 에서 ‘vulnerable’을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했던 일이 떠오르네요.
김해주
2021년 11월 02일 오전 10시 29분
이 단어 역시 주디스 버틀러의 글에서 사용된 단어였어요. Vulnerability는 한글로 ‘취약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 단어가 가진 회복 가능성, 약함을 통해 연대가 형성된다는 의미를 포함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조금 더 부드러운(?)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 번역하였습니다. 각자의 ‘완전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상호 의존을 이룬다고 설명해주신 부분이 vulnerability의 함의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타인들이 각자의 ‘다치기 쉬움’을 인정하고 서로 상호 소통해 가는 과정의 기록으로서의 코키 다나카의 작업도 덕분에 다시 반추해 보게 됩니다.
김해주
2021년 11월 02일 오전 10시 29분
배운 것을 폐기하기 위해 배운 것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에서의 이양희 안무가님의 언러닝은 과거를 잘못된 것, 잊어야 할 것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배움의 방식이자 그 방식의 공유하는 것으로서의 안무 방법론인 것 같아요. 과거에 학습한 것들을 해체하고 확인하는 것에 있어 안무는 특히 ‘몸에 배어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언급하신 동료들의 시선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이양희 안무가님의 공연에서 무엇을 보았는가를 함께 증언해 주는 관찰자가 있었던 것이 기억나요. 비평가와는 다른 역할이었죠. 작품이 나의 몸 밖이 아닌 내 몸 안에 존재할 때 이를 관찰하고 대화할 수 있는 타인과의 협력 역시 언러닝의 배움에서 필요한 상호의존과 연결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김해주
2021년 11월 02일 오전 10시 31분
위 대화들을 보면서 다정한 이웃이라는 주제 안에 담길 수 있는 내용의 폭과 결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대화에 참여해 주신 분들을 떠올려 보게 되는데요. 이미 잘 알고 있는 분들도 있고, 이 지면에서 처음 뵙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제 관계와는 무관하게, 대화 창에 남겨 주신 단정한 글의 토막들을 곱씹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면서, 누군가를 다정하게 느끼는 일, 그러니까 저 스스로의 이웃되기 감각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2021년 11월 05일 오전 11시 38분
그러면서 문득 궁금해졌어요. 미술하는 사람들은 (미술 바깥의) 누군가를 언제 왜 이웃으로 느끼게 될까, 이웃으로 삼고 싶어 할까, 하고 말이죠. 앞선 대화들의 타래에서 질문을 던지는 분이 누군가를 초대한 것도 그분들이 이미 이웃인 경우도 있지만 이웃이 되고 싶어서인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이웃의 감각, 이웃이고픈 감각을 언제 왜 느끼게 되는지요.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관계를 맺기 전에 다가오는 감각이 궁금합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2021년 11월 05일 오전 11시 40분
저는 얼마 전 한 시상식 무대에서 보았던 연극 연출가가 떠오릅니다. 몇 차례나 숨을 가다듬을 정도로 긴장하셨지만 몹시 떨리는 몸짓과 목소리로 말씀하신 수상소감을 들으면서 오히려 그 떨림이 역설적이게도 예술의 힘을 믿는 굳건함으로 다가왔어요. 모두가 예술의 위기를 말하고 우리 스스로도 제도와 여건을 어찌할 수 없어 자조적이 되기 쉬울 때, 그 흔들리는 믿음을 간절하게 다짐하는 누군가가 또 있다는 발견에서 저는 이웃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2021년 11월 05일 오전 11시 45분
관계를 진정으로 대하는 대상을 이웃으로 삼고 싶다고 말하고 싶네요. 공감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관심을 가지는 분야나 처한 환경은 모두 다를지라도. 인간성에서 나오는 (성악설을 믿으신다면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신뢰나 공감이 느껴진다면, 전 그분들과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시스템이 있다면, (딥러닝으로 이런 진심과 신뢰를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그 또한 이웃이 되고 싶기도 하네요.
백남준아트센터 박상애
2021년 11월 10일 오후 07시 59분
주신 질문에 어떤 장면과 냄새가 퍼뜩 떠올랐어요. 전시 도록을 만드느라 충무로에 있는 한 인쇄소에 감리를 보러 갔을 때였어요. 제 허리춤까지 쌓아올린 종이들, 조금이라도 샘플 이미지와 동일한 컬러로 맞추기 위해 여러 번 출력해서 대조해보고 색을 맞춰보시던 직원분들, 그리고 오래되고 거대한 인쇄 기계들에 '이웃'이라는 감각을 느꼈어요. 그동안 수많은 도록과 책들을 만들어낸 곳인데, 또 한번 잘 인쇄된 결과물을 보고 좋아하시던 얼굴이 아직도 종이 냄새와 함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당시에 함께 방문했던 디자이너에 인쇄소 사장님의 안부를 물었는데, 올해로 은퇴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술 생태계에서 각각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에 오랜 이웃의 감각을 느낍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김윤서
2021년 11월 10일 오후 11시 18분
최근 플러그인에 업로드한 ‘쿤스트인스티튜트 멜리’ 영상을 제작할 때 권미나 연극 배우에게 영어 녹취를, 유지원 비평가/기획자에게 번역을, 그리고 정유진 작가에게 영상 편집을 부탁했습니다. 아마도 이 영상뿐 아니라 <다정한 이웃>에 올라온 대부분의 콘텐츠들이 여러 사람의 다양한 형태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협업들이 용역을 제공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관계를 떠나 일종의 ‘이웃 되기’를 권하는 제스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콘텐츠 전면에 드러나는 발화자 외에도 저마다의 역할로 참여하는 협업자들에게 일을 제안하고 그 과정에서 짧게나마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눌 때 역시 이웃의 감각을 느낍니다. 콘텐츠를 통해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와 그것이 내재하는 태도와 가치, 지향점을 그들도 작업 과정에서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전제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트선재센터 조희현
2021년 11월 11일 오후 03시 16분
미술이 아닌 다른 형태의 예술을 창작하고 생산하는 연극계 종사자에게 녹취를 부탁한 것도 어쩌면 <다정한 이웃>으로 초대해 이웃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용역을 의뢰한다기 보다는 이것을 계기로 세 미술관의 활동을 슬-쩍 구경해보고, 쿤스트인스티튜트 멜리와 나눈 대화도 들어보라는 권유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미술계 안팎의 영역을 넘어, 앞서 김성은 관장님께서 말씀하신 ‘예술의 힘을 믿는 굳건함’을 가진 이들과 유의미한 것을 함께 생산할 때 그리고 협업의 과정에서 건강한 교류와 배움의 나눔이 생겨날 때 이웃의 이름으로 연결됨을 느낍니다. 저는 (여러 의미의) 경계 없이 함께 일하는 것이 이웃이 되는 감각으로 닿는 것에 대한 <다정한 이웃> 협업자 분들의 생각과 경험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트선재센터 조희현
2021년 11월 11일 오후 03시 19분
저는 2018년부터 아트선재센터와 통역이나 번역으로 협력해왔습니다. 기획자이자 비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와 요청을 받아 통번역을 할 때 전혀 다른 모드를 취합니다. 후자의 경우, 정해진 시간 안에 맡겨진 과제를 완수하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그래서인지 공들여 번역했던 텍스트임에도 시간이 지나면 그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죠. 아주 인상 깊은 만남이 아니고서는 통역을 위해 지근거리에 앉았던 인물을 이후에 알아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 또한 통역이라는 기능적인 역할을 했던 저를 알아볼 리 만무합니다. 통역사로서 저는 행사가 일어나는 그 자리에 존재하고, 초청 연사만큼이나 많은 말을 하지만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 저 또한 보이지 않는 편을 선호합니다. 행사 이후 제 얼굴이 기억난다면, 글을 읽으며 도대체 누가 번역한 것인지 궁금해진다면, 그건 분명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통번역가 유지원
2021년 11월 14일 오후 07시 42분
아트선재센터는 저를 자주 찾아주시는 소중한 클라이언트입니다. '클라이언트'라 하면 정 없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수년간의 반복된 협력 끝에 제가 우선순위에 두고 특별히 신경을 쓰는 클라이언트가 되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제가 번역했던 글의 저자나 통역했던 연사는 기억에서 멀어진다 해도, 담당자가 누구였는지는 곧잘 기억하는 편입니다. 거의 투명한 존재가 되어 상이한 맥락을 매개하는 제 역할을 알아보는 사람은 늘 아트선재센터의 담당자이니까요. 물론, 일반 관객의 입장이 되어 전시를 보러 갈 때 종종 알아봐 주시며 티켓을 찔러넣어 주시니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늘 좋은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협업자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통번역가 유지원
2021년 11월 14일 오후 07시 43분
제게 이웃은 사람보다 물건이 더 많았습니다. 물건이 담는 인간의 의도나 기억을 만날 때 신나고 에너지를 얻습니다. 작품이나 전시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이란 한글 모양새처럼 무언가를 앞에 두고 보는 경험은 사람을 만나는 일 못지않게 늘 매력적입니다. 읽을 수 없는 것들, 가독성이 뛰어난 것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계속 요동치는 것들. 그 움직임이야말로 물건을 마주할 때 생기는 근본적인 에너지라 생각합니다. 그런 만남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기다리고 싶어서 그런지, 저는 전시 리플렛이나 티켓, 몇 년 전의 사진을 삭제하거나 버리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계속 갖고 있어 봤자 뭐가 뭔지도 모를 한낱 파편에 머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파편 너머에 머물고 싶어서, 과거의 기억이나 과거와 다른 지금의 상상 속에서 머물 수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제 이웃은 오늘도 그렇게 잘 있습니다.
콘노 유키
2021년 11월 14일 오후 11시 12분
몇 년 전인가 기억도 잘 안지만, HER 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변의 어떤 이웃이나 가족보다 날 더 잘 알고 이해해주는 것 같은 '그녀'의 음성에 주인공 만큼이나 애착을 느꼈었습니다. 기계, 기술이라고 분류되는 시스템과 '다정한'이라는 형용사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다정한 이웃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머리 속에서 '다정한 기술'에 대한 궁금증이 솟았습니다. 과연 기술은 다정할 수 있을까요? 사실 '다정한'이라는 형용사는 한국어나 일본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형용사 중 하나 이지만, 영어에서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가 어렵더라구요. 동양적 사유와 연결되어 있는가, 나의 영어가 모자란가, 뭐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디지털이나 기계와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명확하게 경계가 서거나 구분이 선명한 것들과는 다정이라는 표현을 함께 쓰지도, 느끼지도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 박상애
2021년 11월 19일 오후 02시 28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다정한 기술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기술도 우리의 이웃의 형태이지 않을까요. 기술이 없는 환경에서는 우리 일상이 지금처럼 이어지지 않을테니까요. 전 다정한 기술로 비디오를 들고 싶어요. 유튜브가 웹을 점령한 2020년대, 비디오는 그 어떤 매체보다 우리 일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일상을 점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디오가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다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비디오 자체가 가지는 소통과 공감의 기능은 문자나 이미지가 가지는 그것보다는 조금 유연하고 포용적이라고 여겨지고, 그래서 인지 다정해 질 수 있는 잠재력이 더 많은 것 같거든요. 다정한 비디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다정한 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 지 궁금합니다.
백남준아트센터 박상애
2021년 11월 19일 오후 02시 28분
박상애 선생님께서 개인적인 기억으로 기술의 다정함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에게도 기술을 활용한 방식 중 오래도록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은 음악으로 CD를 구워주었던 경험이 아닐까 합니다. 그땐 정상적인 경로로 앨범을 구입하지 않고 mp3를 공유하고 다운받아 내가 원하는 음악의 플레이리스트를 CD로 만드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저작권이나 올바른 방식의 예술 작품 공유에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좋았겠지만, 당시의 저는 디지털화한 음악을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듣고, 음악적 취향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과 서로 CD를 주고받는 것이 그 어떤 선물보다 좋았고, 지금까지도 몇 개의 CD와 그것을 준 사람들이 연동되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르코미술관 전지영
2021년 11월 22일 오후 11시 53분
이렇게 생각해보면 저에게 다정함이란 휴먼 터치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어떤 기술을 쓰더라도, 기관끼리의 관계라도, 따뜻하더라도, 차갑더라도, 다정이라도, 소정이라도, 인간이라는 우리가 기술과 관계 맺는 지점이 되지 않을까 짧게 생각해 봅니다.
아르코미술관 전지영
2021년 11월 22일 오후 11시 54분